연재 [빈들의 양식] #1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1과
제목: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 (마1:1-25)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왔다는 족보로 시작된다. 그는 다윗의 후손 요셉의 아내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태어났고 천사는 그가 구원자 예수라고 알려주었다. 예수는 이사야가 예언한 임마누엘이었고 그 이름은 하나님이 임재하여 자기 백성과 함께한다는 의미였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84-86 참조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서두에 유독 아브라함과 다윗, 두 사람이 언급된 이유는 무엇일까?
2. ‘예수’ 이름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 이름은 구약 역사에서 어떤 이름으로 유비 되었는가?
3. ‘임마누엘’의 뜻은 무엇인가? 그 이름은 ‘여호와’ 하나님과 어떤 상관성이 있는가?
4. 이스라엘 백성의 통치 좌소인 성막에 임재했던 ‘여호와’ 하나님과 임마누엘 예수 그리스도가 대조된다. 그것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5.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다윗 왕국이 바벨론에 멸망하며 포로 시대로 끝나는 구약 역사 개관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본문 해석 노트
1. 신약은 아브라함과 다윗 언약에 예언된 나라의 회복과 성취를 보여 준다.
하나님의 아브라함 선택과 언약(창12)은 세상 제국들과 구별되는 하나님 나라 건설 목적을 위한 시작이었다. 하나님 나라의 유형 국가로서 이스라엘은 다윗 왕국 시대에 완성되는 듯했지만 바벨론에 멸망했다. 그 나라는 다만 모형이었고, 하나님은 다윗 언약(삼하7:11-16)으로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계시했다. 다니엘서에 더욱 선명하게 계시 된 그 나라는 제국을 멸망시키고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였다(단2:44-45). 그 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통치하는 나라이며 세상 제국에 보여 주는 하나님의 이상 국가였다. 바벨론에 멸망하고 회복을 고대하던 그 나라는 신약 시대 교회로 성취되며 이어지고 끝날에 새 예루살렘,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완성될 것이다.
2.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왕만 완전한 샬롬을 누리게 한다.
왕국은 나라의 주인인 왕의 통치가 미치는 영역이다. 무주공산은 의미가 없다. 왕다운 왕이 있을 때 그 나라는 이상 국가가 된다. 하나님 나라의 왕은 완전하다. 예언서에 언급된 그 왕의 이름은 메시아요, 임마누엘이며 인자였다. 신약 시대 이 땅에 온 그 왕의 왕권과 통치를 받아들인 우주적인 교회는 그의 나라였다. 장차 완성될 그의 나라에서 백성인 성도는 완전한 샬롬을 누릴 것이다. 샬롬은 이 세상에서 행복이라 불리기도 하며 천국의 샬롬은 영생의 풍성함이다. 샬롬은 완전하고 전능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통치 아래서만 누릴 수 있다.
3. ‘예수’ 이름은 죄와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자기 백성의 구원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선한 율법이 인간의 연약함으로 저주의 속박이 되어 죄인으로 살아가는 삶이 인간의 현주소이다. 죄인 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이집트의 노예와 바벨론 포로 같은 삶에서 회복을 기다리고 있다. 모세의 율법에서 자유케 되는 은혜의 가나안 입성은 구원자를 통해 가능하다. 여호수아는 구원자의 예표였고 신약에서 같은 이름의 구원자 예수가 실체로서 나타났다. 하나님 나라의 왕이 구원자로서 임한 것이다. 그 구원은 율법의 기준에 의한 선악의 행함으로 말미암지 않고 셋 계열로 표방되는 예수 족보의 소속 여부에 달려있다. 그 족보는 혈통을 넘어 법적 공인이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족보가 아니라 요셉의 족보였다. 또한, 족보에 오르는 자들은 은혜로 선택되었다. 예수님 족보에 자격 없는 네 여인이 예다. 그들은 구원받을 자격 없는 죄인 된 우리의 대표들이다.
4.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에게 사람으로 임재한 임마누엘 하나님이었다.
‘자기 백성에게 임재하여 함께하는 창조주’라는 이름의 ‘여호와’는 이스라엘 가운데 통치 좌소인 성막에 임재하여 자기 백성과 함께하는 임마누엘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여호와가 자기 백성 가운데 임마누엘로 나타난 창조주였다. 하나님 나라의 왕인 그는 성막 안의 대제사장이요 영원한 희생제물이었고 성육신하여 사람으로 이 땅에 온 하나님이었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신적 존재 방식의 신비였다. 이로써 율법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은혜와 사랑을 증명했다. 우리를 위해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여, 영원히 영광 받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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