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하는 짜릿한 모험(견습선교이야기)
< 하나님과 함께 하는 짜릿한 모험 >
조나단/장정숙 2009 피지 견습선교사
들어가며
“닉, 사는 게 지겹고 재미 없죠? 겨우 이렇게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어요. 신이 내 즐거움을 앗아가 버리면 어쩌나 불안해 하지만 그건 결국 뒷걸음친 거였죠. 길가에 앉아 진흙을 만지고 노는 게 즐거워서 디즈니월드를 가고싶어 하지 않는 소년과 같죠. 앞에 훨씬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데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이 우주의 창조주와 함께하는 것처럼 신나는 모험도 없는데 말이죠.”
위의 인용문은 『예수와 함께 한 저녁식사』 (데이비드 그레고리 著)에서 딱히 즐겁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그렇다고 쉽게 그만두지도 못하는 평범한 샐러리맨, 닉에게 어느 날 나타난 예수님이 던진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방향을 설정하느라 고민이 많던 내게 명쾌한 해답과 도전을 준 구절이기도 하다. 점점 더 ‘닉’처럼 되어 가는 내 자신에게 위기 의식을 느꼈다. 겨우한 번뿐인 인생, 이렇게 아등바등 살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었기에,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었기에, 인생의 가장 짜릿한 모험을 하고 싶었기에 과감히 일상을 털어냈고 우주의 창조주 하나님과 펼치는 유쾌한 모험은 신학대학원에 발을 내딛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리고 견습선교는 그 모험의 연장선이다.
자칭, 타칭,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서, 또 사람들에게 하나님만 바라보는 믿음의 삶을 살라고 열변을 토하면서 내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참담한 일이겠는가. 새로운 인생의 모험을 시작한 내게, 아무것도 예상할 수는 없지만 앞에 훨씬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음을 소망하는 믿음의 삶을 살고 싶었다. 내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 보았을 때, 그분께서 나를 어떠한 여정으로 이끄시는지, 무엇을 보여주시고 경험케 하시는지 삶으로 살아내고 싶었다. 견습선교지는 내게 황량한 광야와도 같은 곳이지만, 하나님과 가장 친밀한 사귐을 나누고 놀이동산의 롤러코스트의 전율을 느끼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견습선교를 통해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새로이 알게 하신 선교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며 경험하고 싶었다. 이 마지막 때에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일하심 한가운데 들어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1막 – 모기가 사랑한 남자, 망고를 사랑한 여자
하나님께서는 피지로 우리 부부를 이끄셨다. 견습선교지로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곳이기에 이 나라에 대한 무지함도 컸다. 드넓게 펼쳐진 푸른 산호 바다, 열대지방을 상징하는 야자수와 낙천적인 현지인들에 대한 이미지뿐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상황은 전혀 달랐다. 물론사전에 선교사님을 통해서 대략의 현지 사정과 사역 내용을 전해 들었지만 이미지로 그려내던 피지는 온데간데 없었다. 연일퍼붓는 비, 남태평양 섬나라임을 혼돈스럽게 하는 인도인이라는 존재들과 그 문화 등등.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처음 일주일은 이곳에서 가장 큰 도전이기도 했고, 또 그만큼 기억에 남는 시간이기도 했다. 현지문화 적응을 위해 현지 인도인 가정에서 일주일 간 체류했다. 끊어진 전기, 폭우로 인한 습한 방과 수많은 벌레 떼, 또 인도인 특유의 냄새까지 더해져 모든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첫날아내는 밤새도록 잠을 뒤척였고, 잠이 들어서도 악몽에 시달렸는데, 한 밤 중 나를 흔들며 깨워서는 악한 영의 세력을 물리쳐 달라는 기도를 요청했다. 예수의 이름을 선포하며 기도하던 끝에 마음 한 켠으로는 덜컥 겁도 났다. 이 힘겨운 첫 날을 생각하니 현지 가정에서의 일주일이 염려됐고, 앞으로 피지에서의 일 년이 캄캄해 보였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첫날부터 믿음의 싸움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런데 곧 육체적인 고통이 함께 찾아왔다. 우기철이라 모기가 극성을 부렸는데, 이 녀석들이 나의 온 몸에 달려들며 찐한 스킨십의 흔적을 남기고 간 것이다. ‘백’이라는 말은 무엇을 과장할 때나 쓰는 말인 줄 알았는데, 정말백 군데 이상을 단 며칠 새에 물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주는 심한 가려움과 쓰라림의 고통은 나 자신을 너무나도 나약하게 만들어, 단 일주일 만에 두고 온 고향 땅을 생각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댕기열’에 걸리고 만 것이다.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모기에 물리면 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온다고 하는데, 나는 제대로 이 손님을 맞이하고 말았다. 이 불청객이 함께 데려온 극심한 열과 두통, 추위도 오래 머물게 한 것이다. 여전히 모기가 끊임없이 나에게 구애를 해오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법 과감히 그 구애를 거절하는 방법도 체득하고 모기와의 스킨십에도 의연해지고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한편 아내 역시 육체적인 고통으로 한 달여를 고생했다. 과일을 무척 좋아하는 아내에게 망고 알러지가 발생한 것이다. 처음엔 입 주변으로 시작한 것이 점차 얼굴 전체에 퍼졌고 귀와 목, 등에도 부분적으로 알러지가 일어났다. 아내야 말로 극심한 가려움증과 고열에 시달려야 했다. 한창심했을 때는 마치 흠씬 두들겨 맞은 권투 선수처럼 얼굴이 부어 올라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기도 했다. 많이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잘 이겨냈다. 그리고 여전히 아내는 과일 마니아답게 하나님께서 주신 열대의 열매들을 사랑하고 있다.
2막 – 어린이에게서 희망(HOPE)을 보다 : Hope Community Church 에서의 사역
풋내기 견습선교사인 우리들의 본격적인 삶은 사웨니라는 인도인 마을에서 시작됐다. 박영주 선교사님이 세운Hope Community Church(HCC)에 마련된 방에서 살림을 마련했고, 그 교회의 현지 인도인 사역자 (Vijay Raj)를 협력하는 것으로 사역을 시작했다. 피지로 오기 전 파송 받은 한국교회에서 성도들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우리 부부가 먼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으로 현지인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자연스럽게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선교사로서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에 곧바로 투입되는 것이 사실 적잖은 부담이었다. 무엇보다 부족한 언어실력이 문제였다. 한번도 해보지 않은 영어 기도며, 설교, 그리고 자연스러운 의사소통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큰 도전이었다. 언어는 견습선교를 마칠 때까지 내게 던져진 큰 화두가 되었다. 선교에 있어서, 언어의 비중과 역할, 그리고 중요성을 단 하루라도 느끼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 말이다.
참으로 고맙게도 첫 사역지인 호프 교회 사람들은 내 영어를 잘 알아들어 주었고, 때로 잘 소통되지 않을지라도 인내로, 열심으로 내 말을 듣고 반응해주었다. 이러한 사람들의 태도는 내가 좀 더 마음 놓고 편하게 사람들과 어울리며 의사소통 하게 해 준 처방전이었다.
HCC에서 10여 개월 살면서 경험했던 가장 큰 추억은 역시 아이들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코흘리개서부터, 내 일까지 거들어주며 큰 도움을 줬던 녀석들까지 많은 꼬마 친구들이 찾아왔다. 각종 학원들로 어른보다 더 바쁜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한국 또래들과는 달리 이곳 피지 어린이들은 학교가 파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자유로이 보낸다. 그래도 딱히 하는 일이 없기에 방과 후 교회 찾아 오는 일이 이들에겐 큰 낙이다.
난 이 친구들과의 접점을 축구에서 찾았다. 축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공 차는 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맨 발로 흙 바닥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꼬마 친구들의 해맑은 웃음, 한 팀이 되어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는 손 맞춤, 그리고 허물 없는 대화까지. 때로 원정을 나가 다른 팀들과도 경기를 맞붙기도 했고, 정식축구팀을 만든다고 이름도 짓고(Hope Blues) 유니폼도 맞추기로 하는 등 축구를 통해 인도 소년들과 긴밀함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축구를 통해 복음을 전하려고 한 것이 내 궁극의 목표였지만 이 어린 친구들과의 천진난만한 놀이자체가 내게도 큰 유쾌함이었다.
안타깝게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축구와 또 그것에 접목한 복음전파는 계속하지 못하게 되었는데, 다시생각해봐도 인도 어린이들을 위한 접근방법과 사역은 스포츠가 가장 효과적이지 않나 생각해본다. 좀 더 규모와 체계를 가지고 이 사역을 시작한다면 분명 좋은 결실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아내는 또래의 여자 아이들과 좋은 친구가 되었다. 아내를 ‘쑤~(아내의 영어 이름-SOO)’라고 불러대며 친 언니, 이모처럼 잘도 따른다. 아내는 그런 아이들을 데리고 피아노나 워십 댄스 등 음악적인 부분으로 접근했다. 음악을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는 이들에게 피아노 건반을 눌러보는 것이나 음악에 맞춰 안무를 배우는 일은 새로운 세계로의 입문이었다. 때로 가능성과 좋은 은사를 가진 친구들이 있는데, 이들에게 이런 좋은 기회들이 계속적으로 제공된다면 참으로 좋은 교회 일꾼과 사역자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인도 어린이 사역을 조금이나마 경험하면서 느낀 것은 이 어린이 사역이라는 ‘밭’이 그야말로 금싸라기 땅이라는 것이다. 조금의 관심만 있으면 쉽게 교회에 접근해오기 때문에 그야말로 굴러들어오는 싹들인 것이다. 이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교육시키고 양육시킬 수 있을 것인지, 또 이들의 부모님과 어떤 유대관계를 맺으면서 궁극적으로 이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을 통해 어떻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과 실제적인 방법들이 연구되고 이뤄진다면 하나님 기뻐하시는 귀한 사역의 열매들이 맺어질 것이라 소망한다.
한편 HCC에서의 또 하나의 큰 경험은 Youth 사역이었다. 하나님께선 이 사역을 위해 이미 함께할 청년들을 예비해 놓고 계셨다. 나 역시 제자훈련으로까지 그 모임의 성격이 깊이 들어갈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선 한 명 한 명 온전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는 청년들을 부르고 계셨음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많은 인원들이 참여하는 모임은 아니었지만 수개월에 걸쳐 요한복음 한 권을 깊이 있게 공부하고 거기서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음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모시고 모든 인생의 목적과 초점이 예수님께 맞춰진 삶을 살겠노라고 고백하고 헌신하는 청년들은 분명 HCC와 사웨니 지역, 그리고 피지 인도인들의 복음화를 감당하는, 성령의 기름 부음 받은 제자로 성장할 것이다.
3막 – 하나님의 기적을 바라보다 : Joyful Community Church에서의 사역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 우리 부부를 이곳에 부르셨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선교현장의 최일선으로 우리를 인도하신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향한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간절한지를 느끼게 하셨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변두리와도 같은 곳, 가장 비천한 곳, 바로 그곳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구원의 중심 무대였다. Joyful Community Church. 2009년 4월 12일, 부활주일에 첫 예배를 드린 조이풀 교회의 시작. 비세이세이 마을, 인도인 성도, 라케쉬의 집에서 출발한 이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사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세워진 교회라 염려스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거기엔 이 교회를 통해 한시라도 빨리, 잃어버린 영혼들을 더 구원하고자 성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더 컸다. 그리고 그 곁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교회를 이끌어 가시고 구원의 문을 여시는지 지켜보는 일은 무엇보다 큰 감격이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예레미야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 이곳 피지 인도인들에게도 똑같이 유효하다. 하나님은 작고 초라하지만 조이풀 교회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영혼들을 택하셨고, 구원의 자리로 초청하셨다. 집 나간 아들을 애타게 기다리는 아버지처럼,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 영혼들을 기다리셨다.
힌두 신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그 이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사람들. 머리부터 발끝까지 힌두문화로 채색되어 있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가장 놀라운 기적이었다. 물론 이들이 온전히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만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들의 삶을 채워 나갔음을 느낄 수 있었다. 스무명 남짓 드리는 예배지만 저 우상숭배의 그늘에 파묻혀 있던 이들이 빠지지 않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었다.
대부분의 성도가 초신자들이라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것인지 무척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셨고 선한 일들로 인도하셨다. 라케쉬를 통해, 여러 선교단체와 협력한 선교활동 –구호활동, 의료활동-을 펼쳤고, 그로인해 교회를 알리고 마을 접근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 매주 수요일, 목요일 셀 모임을 통해,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말씀을 듣게 했으며, 성도들과도 더욱 친밀해지는 계기를 만들어 나갔다. 특히, 함께 사역한 벤 전도사의 수고가 대단했다. 매일같이 기도로 매달리며, 일일이 성도들뿐만 아니라 마을의 모든 집들을 방문하며 그들과 친분을 쌓고 복음을 전하며 다닌 것이다. 그의겸손하고 진심 어린 자세, 또 사람들과 쉽게 소통할 줄 아는 친화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감 없이 잘 받아 들일 수 있도록 해 준 밑거름이었다.
개인적으로 조이풀 교회와 함께 한 날들은 내게 큰 행복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해줄 수 있었음에, 또 그들로부터 오히려 더 큰 사랑을 받았음에 행복을 느낀다. 무엇보다 우리의 사역이 마무리 되는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수확하신 열매를 맛볼 수 있었음에 행복했다. 첫 세례식이 그것이었다. 이제교회 문턱에 첫 발을 들여 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처음 접한 그들이었기에 이 세례식이 주는 의미가 남달랐다. 평생을 힌두 종교와 그 신들을 섬기는 것이 일상이었던 사람들인데, 이제 그 모든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자신들의 구주, 참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게 된 것이다. 다시한 번 말하지만 이것만큼 놀라운 기적이 어디 있겠는가? 그야말로 죽은 생명이 다시 살아나는 영광스러운 사건이 아니겠는가? 이것만큼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바라시고 기뻐하시는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번에 모두 4명이 세례를 받았다. 라그니(여), 쉬브닐(남), 제이쉬(남), 자크디쉬(남)가 그들이다.
심성이 곱고 신실한 부인, 라그니는 집 주인이 강한 힌두교인이라 세례를 받게 되면 자칫 쫓겨 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담대하게 세례를 받기로 했다. 힘든 가정 살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일하며 예수님을 섬기는 라그니 부인은 미래 조이풀 교회의 여성 리더이다.
쉬브닐은 라그니 부인의 큰 아들인데, 고등학생인 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청년이다. 앞으로 이 젊은 친구를 통해 하나님께서 어떤 놀라운 일들을 펼쳐 나가실지 무척 기대된다.
제이쉬는 직장인이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승진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에서 해고되는 일을 겪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망하지 않고 더 큰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 발견하고 굳게 신앙을 지키고 있다. 현재 그는 신학교 입학을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종이 되어 불모지와 같은 인도인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비전을 품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크디쉬. 그는 힌두 사원에서 종교행사나 의식 때 음악을 연주하는 했었고, 그것이 그에게 큰 경제적 도움을 주는 원천이었다. 그러나 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리며 악한 영들에 사로잡혀서 괴로운 삶아야만 했다. 처음 본 그의 얼굴엔 밝은 빛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변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사원에서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예수님께 자신의 삶을 드리겠노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이제 천사와 같이 아름답게 변했다. 예수님의 빛으로 어둠 가운데 있던 그 영혼이 본래의 순수하고 맑음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이들 한 명, 한 명 모두가 조이풀 교회의 값진 열매들이다. 하나님께서 예비해두시고 기다리신 귀한 영혼들이다. 이제 이들을 시작으로 조이풀 교회의 나머지 사람들도 진정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이들을 통해 조이풀 교회가 부흥하고 그들이 사는 지역이 복음화 되어 하나님 영광이 가득 임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의 지속적인 기도가 절실하리라. 여전히 불안하고 어린 신앙인들이라 쉽게 유혹당하고 흔들릴 수 있기에 강력한 중보기도로 이 교회가 든든히 서갈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4막 – 글을 정리하며
우리의 일상을 과감하게 박차고 나온 이곳에서의 모험은 기대를 초월하는 짜릿한 전율이었고 감동이었다. 오늘도 살아 계셔서 성실하게 일하고 계시며 우리의 모든 것을 채워주시고 열어가시는 아버지 하나님과 깊은 사귐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었으며, 전혀 예상할 수 없는 상황에서 소망을 두는 믿음의 훈련을 쌓는 시간이었다. 아울러 선교가 무엇이고 얼마나 중요한지, 후방에서 기도와 물질로 후원해 주시는 동역자들의 힘이 얼마의 큰 지 몸소 체감하며 이 마지막 시대 잃어버린 한 영혼을 애타게 찾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절감한 시간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귀한 선교의 장을 마련해주시고, 아낌없는 배려와 격려를 주시며, 삶으로 선교를 보여주신 예수님 같은 두 분 선교사님, 박영주, 남성숙 선교사님께 감사 드린다. 또한 강장로님, 신권사님, 두 분께는 사랑의 빚을 진 자로서 살았고 두 분을 통해 사르밧 과부의 기적을 경험할 수 있었으니 이 얼마나 큰 축복이 아닐는지. 두 분께 무한한 사랑과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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