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빈들의 양식] #29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29과
제목: 최후의 만찬
(막14:10-31, 요13:1-14:31, 마26:17-35, 눅22:1-38)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예수는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에 마가의 집에서 최후의 만찬을 했다. 누룩이 안 들어간 빵과 쓴 나물로 식사를 하면서 모세 시대 첫 유월절을 상기하며 이야기했다. 예수는 제자들에게 무교병을 떼어주고 포도주도 부어주면서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을 자신의 살과 피라고 했다. 그리고 제자들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다락방 유언 강론을 남겼다. 식사 끝 무렵에 예수는 한 제자가 그를 배반할 것을 언급했고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면서 새 계명을 주었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296-304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의 의미는 무엇이며 예수는 왜 그 시기를 맞추어 십자가에 달려 죽었는가?
2. 예수가 제자들에게 기념하라고 나눠준 빵과 포도주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예수가 최후의 만찬을 하면서 의도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3. 최후의 만찬석에서 예수와 제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4. 식사 후 예수가 제자들에게 세족식을 베풀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5. 예수가 제자들에게 서로 사랑을 당부하며 새 계명이라고 말한 의미는 무엇인가?
6. 가룟 유다의 예수 배반과 베드로의 예수 부인 예고를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 본문 해석 노트
1. 예수의 사명은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는 것이었다.
복음서는 시종일관 “예수, 그는 과연 누구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복음서의 시작은 세례요한의 입을 통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다. 그리고 3년 공생애가 끝날 무렵 최후의 만찬석에서 유언과 함께 예수는 유월절 어린양으로 죽는 자신을 제자들에게 각인시키며 성찬 의식을 베풀었다. 출애굽 당시 첫 유월절에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었던 상황을 재연했다. 예수는 남북통일을 이룬 다윗이나 독립투사 마카비 같은 혁명가가 아니었다.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예수의 정체성을 분명히 깨닫고 고백했던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위대한 자라는 칭찬을 받을 만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그 깨달음이 불분명하여 태어나지 말았으면 좋을뻔했다는 말을 들으며 후회를 남긴 채 인생의 종지부를 찍었다. 지금도 복음서가 예수에 관하여 말하고 싶어 하는 진리를 깨닫는 자는 세례요한보다도 더 큰 자다(눅7:28). 그 진리에 대한 깨달음과 고백이 불분명한 자들은 오늘날도 예수의 생명이 주는 풍성함과 자유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는 그를 알고 보는 눈은 복이 있다고 했다(눅10:22-23).
2. 보혜사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하나임을 증언한다.
최후의 만찬석에서 예수가 그의 “떠남”을 주제로 강론할 때 베드로가 물었다.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왜 지금은 그곳에 따라갈 수 없다 하십니까? 주를 위해 내 목숨도 바치겠나이다.”(요13:36-37)라고 했다. 옆에 있던 도마도 예수에게 말했다. “주께서 가시는 길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데 어찌 우리가 그 길을 안다고 말씀하십니까?” 빌립도 늘 품고 있던 그의 생각을 털어놓고 예수에게 부탁했다.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인간은 영원한 존재이기에 죽음 이후에 가는 곳을 알고 싶어 하며, 영적인 존재이기에 하나님을 보고 싶어 한다. 예수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어라. 내가 보혜사를 보내리니 그때 너희가 모든 것을 알게 되리라”라고 했다(요14:11, 16, 26). 보혜사는 아들의 영이며 진리의 영이요 성령이다. 보혜사 성령은 예수와 하나님이 하나임을 증언한다. 성령과 함께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며 동시에 셋인 존재 방식을 이성이 아닌 직관으로 알게 한다. 또 죄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과 영생을 얻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피조물이 된다는 사실을 확증해 준다.
3. 모든 율법의 요약은 사랑이며, 예수는 서로 사랑의 새 계명을 주었다.
최후 만찬을 나눈 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면서 서로 사랑으로 섬기라고 했다. 당시 예수 제자 공동체 안에 누가 더 크냐 하며 내부 갈등과 분열의 조짐이 있었다. 예수가 혁명정부를 세울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예수는 다락방 강론을 통해 “나는 이제 너희를 떠난다. 내가 가는 그곳에 지금은 너희가 따라올 수 없다. 너희는 하나다. 서로 섬기며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게 하라. 이것이 내가 너희에게 주는 새 계명이다.”라고 했다(요13:33-35). 사도 요한은 예수가 언급한 새 계명이 모세를 통해 준 옛 계명과 그 내용이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렇지만 옛 계명을 사랑의 새 계명으로 다시 주는 것이라고 했다(요일2:7-8). 옛 계명인 모세 율법의 핵심은 십계명이고, 그 십계명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된다. 이런 관점에서 예수가 언급한 새 계명은 내용상 옛 계명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그 두 계명은 서로 다르다. 모세를 통해 받은 옛 계명은 하나님이 그의 기준을 제시하고 요구하는 최고선이었지만 준수할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는 무거운 멍에였다.
예수는 옛 계명이 바뀌어 새 계명이 되는 단서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라는 말을 덧붙였다(요13:34). 예수의 사랑을 알고 그 능력을 덧입을 때 그 계명을 준수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한다.”라는 예수의 말에서 그 깊은 뜻을 헤아릴 수 있다(요14:10). 예수 안에서 아버지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처럼 예수의 사랑이 성도 안에서 생명의 힘으로 역사할 때 그것은 새 계명이 된다. 이것은 영적인 연합의 신비에서 온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다면 새 계명을 주신 영적 신비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로 거듭난 자는 이 신비를 맛보며, 내 힘이 아닌 그의 능력으로 새 계명을 준수하며 살아가는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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