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3 [광야의 만나]
박영주의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 책과
짝을 이루는 묵상 노트
제13과
제목: 모세의 하프타임 (출3-4장)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의 양치기 시절은 그의 인생 하프타임이었다. 하나님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를 불렀다.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함께하며 인도하실 ‘여호와’로 자기를 계시했다. 사명자로서 시내산에서 이집트로 돌아가는 도중에 모세는 죽음과 사투를 벌였다. 십보라는 직감으로 그 원인을 깨닫고 그를 위해 아들의 할례를 시행했다.
☞ 관찰 질문
1. 시내산에서 모세가 신의 음성을 들을 때 어떤 체험을 했는가? 떨기나무와 불꽃과 신을 벗는다는 말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2. 하나님이 모세를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불렀을 때 모세의 반응은? 모세가 사명 감당하기 어렵다고 하자 붙여주신 동역자는 누구인가?
3. 하나님은 모세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했는가? “스스로 있는 자”라는 말을 당신은 어떻게 이해하는가?
4. 창조주 엘로힘의 또 다른 이름 ‘여호와’는 어떤 성품을 일컫는가?
5. 모세가 사명을 받고 이집트로 가던 길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6. 할례의 의미는 무엇이며 여자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되는가?
☞ 본문 해석 노트
1. 신앙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이다.
모세는 호렙산 떨기나무 앞에서 부르심을 받으며 여호와를 경험했다. 별로 쓸모없는 광야의 흔한 떨기나무는 노예처럼 사는 히브리인의 모습일 수 있고, 실패와 좌절의 모세 인생 형편일 수 있으며, 우리네 인생의 단면일 수 있다. 그러나 불꽃 같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면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창3:9)을 불렀고 모세를 불렀으며 우리 각자를 불렀다. 부르심에 응답하지 않는 것,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이 죄다(마23:37).
2. 하나님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와 언제나 함께하신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4절)”, 신을 벗으며 부르심에 응답한 모세에게 하나님은 ‘여호와’로 자기를 계시했다. 이전까지는 엘로힘 하나님이었지만 처음으로 여호와로 나타났다(출6:3).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 곧 피조물이 아닌 자존자이며, 미래형으로 ‘I will be what I will be.’로 자기를 소개했다. 각자의 눈높이로 나타나실 분이며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분(성육신)임을 암시했다. 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도 하셨다.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후손들과도 함께하시겠다는 의미였다(출3:12). 오늘날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인 우리에게까지 유효한 언약이었다(마28:19-20).
3. 하나님은 부르심에 응답하는 자에게 사명을 주신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중적이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하나님과 생명적 관계를 맺는 존재로서의 부르심이요 그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선교적 존재로서의 부르심이다. 이집트로 돌아가는 모세처럼 부르심을 받은 자는 세상으로 가서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해야 한다.
일꾼은 하나님을 밖에 두고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하나님을 돕는 자가 아니다. 많은 성도가 이 오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법궤를 운반하다 죽은 웃사(삼하6:6-7)처럼 하나님을 도우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 하나님의 일꾼은 주님이 일하시도록 나를 의의 도구로(롬6:13) 내어드리며, 열매를 맺기 위해 그의 안에 거하는 것(요15:5)이다.
4. 세상으로 나갈 때 먼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메마른 광야의 삶이 아니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3:8), 곧 풍성한 삶을 위한 것이다. 다만 광야를 거쳐야 가나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광야를 거치며 깨어지고 자아가 처리되는 정결의 과정이 필요하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마음의 할례를 받지 않고 세상으로 나가면 실패와 죽음밖에 없다. 모세 가족의 할례는 이스라엘 공동체 할례의 서막이었다(출4:23-26). 구원을 위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신 우리의 ‘피 남편’이다. 사명자는 십자가 고백에서 출발해야 한다(갈5:24).
☞ 나의 노트(묵상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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