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14 [광야의 만나]
박영주의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 책과
짝을 이루는 묵상 노트
제14과
제목: 열 재앙 (출7-12장)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나라 모형으로 만들기 위해 이집트에서 불러내려고 했다. 이집트 왕은 노예로 부리던 그들을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하나님은 모세를 세워 창조주의 권능을 드러냈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이 의지하던 신들의 무능을 목격했고 파라오는 결국 굴복했다.
☞ 관찰 질문
1. 모세를 통해 이집트에 내린 열 가지 재앙은 어떤 것들이었는가? 열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2. 파라오가 계속 약속을 번복한 그 완악(강팍)함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는 표현의 의미는 무엇인가?
3. 천재지변 속에 창조주의 메시지가 들어있을까? 있다면 그 근거는 무엇일까?
4. 열 재앙을 이집트의 형상이 있는 신들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싸움, 곧 신들의 전쟁으로 본다면 재앙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5. 이스라엘을 이집트 노예 생활에서 구출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나?
☞ 본문 해석 노트
1. 인생은 마음의 강퍅함이 고통의 근원이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여 고기들이 몰살하고 악취로 마실 물이 없었던 첫 번째부터 열 번의 재앙은 파라오의 강퍅함 때문이었다. 그의 강퍅함은 창조주를 알지 못하고 피조물을 신격화하여 섬긴 무지에서 비롯되었다. 무지와 강퍅함이 고통의 근원이었다. 한 선지자가 외쳤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주 만군의 여호와 말씀이니라”(렘2:19). 이 땅의 모든 고통은 죽음에서 파생된 것이다. 열 번째 재앙은 죽음이었다. 왕의 장자부터 첫 소생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온 땅 전무후무한 부르짖음은 회개 없는 자들의 지옥 곡성 그림자였다.
2. 하나님은 자연과 미물을 통해 인간의 교만과 강퍅함을 깨뜨린다. 때로는 강퍅한 자를 강퍅하게 두어 오히려 그의 권능을 드러낸다.
하나님 심판은 종종 자연재해로 나타났다. 메뚜기나 기생충 같은 약한 미물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무서운 존재가 된다. 바로의 십만 대군도 속수무책이었다. 일반 현미경으로 볼 수도 없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했다. 바로의 강퍅함은 열 재앙으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났고 성경의 반복되는 말씀은 “나는 여호와니라”,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였다.
3. 보이는 것만 믿는 사람은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눈으로 볼 수 없다 하여 영이신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자들이 있다. 모든 것을 우연한 자연 현상이라고 믿는 것은 무지와 교만과 강퍅함의 소치다. 이집트의 신들은 눈으로 볼 수 있게 형상화한 피조물들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파라오와 모세의 싸움은 신들의 대리전으로 보았다. 사람들은 어느 신이 더 큰 능력을 지닌 왕 중 왕인지 주목했다. 하나님은 전체 이집트 신들의 무능력을 드러냈으며(열 재앙의 ‘열’은 히브리적 숫자 의미로 ‘전체’라는 뜻임) 피조물과 차별화된 창조주의 권능을 보여 주었다. 오늘도 우리의 일상과 내면에서 왕이신 주님을 거스르며 시시하고 잡다한 것들을 붙들고 스스로 왕이 되려는 파라오 같은 자아 사이에 왕 싸움은 계속되고 있다.
4. 하나님이 왕으로 좌정하신 그의 나라에는 참 자유가 있다.
이스라엘을 이집트의 속박에서 구출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주고자 했을까? 자유였다. 민족적 해방과 육신의 자유뿐만 아니라 마음과 영혼의 자유였다. 인간은 사회적 틀 속에서 자유를 누리기 어렵다. 세상이 주는 자유가 너무 제한적이기에 항상 자유에 대한 갈증이 있다. 그것은 억압된 분노로 표출하여 갈등과 폭력, 전쟁을 유발하기도 한다. 주의 영이 있는 곳, 하나님의 통치 영역 안에는 참 자유가 있다(고후3:17). 인생과 삶의 현장에서 우리 마음을 주의 영이 주장하면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
☞ 나의 노트(묵상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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