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광야의 만나] #36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36과
제목: 박수무당 발람 (민22-24장)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이스라엘이 강대국 아모리와 바산 왕국을 무너뜨리자 인접한 남쪽 모압의 왕 발락은 두려웠다. 그는 영험靈驗한 복술가 발람을 초청하여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부탁했다. 그러나 발람은 여호와의 개입으로 저주가 아닌 축복을 선포했다. 위기를 벗어나고자 시도했던 모압 왕의 계략은 실패했다.
☞ 관찰 질문
1. 모압 왕 발락은 어떤 소식을 듣고 몹시 두려워했는가? 그가 위기를 벗어나고자 시도한 계략은 무엇인가?
2. 모압 왕의 발람에 대한 믿음과 기대는 무엇이었는가? (22:6) 이스라엘의 저주를 요청받은 발람은 어떤 태도를 보였는가? (24:10)
3. 발람의 고향 브돌의 위치는 어디이며(22:5), 그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발람 에피소드에서 여호와에 대한 그의 입술의 표현(23:19)과는 다르게 행동했던 그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4. 후대에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 방문 여행에 동기가 된 발람의 메시야 예언은 무엇인가? (24:17-19)
5. 신약성경에서는 발람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가? (유다서1:11, 계2:14, 벧후2:15-22) 또, ‘발람’이란 말뜻은 무언인가?
☞ 본문 해석 노트
1. 기독교 신앙이 본질을 벗어나면 종교가 된다.
종교는 인간의 힘으로 얻기 어려운 원하는 바를 신이나 형상화한 신적 존재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창조주의 자기 계시를 통해 알게 된 그의 뜻 곧 진리를 따라 살려는 삶이다. 그것이 인간의 본분이고 존재 의미이며 진정한 복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 신앙과 종교의 차이는 그 믿음의 출발과 목적이 신 중심이냐 자기중심이냐의 문제다. 신 중심으로 시작한 기독교 신앙도 자기중심으로 변질하여 그 본질에서 벗어나면 종교화된다.
2. 인간이 탐욕으로 눈이 어두워지면 짐승만도 못한 존재가 된다.
발람은 하나님의 거듭된 거부에도 불구하고 물질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탐욕으로 미혹되어 나귀만도 못한 모습을 보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다른 피조물과 차별화된다. 영원을 인식하는 존재이며 최고선과 높은 도덕적 가치를 아는 존재다. 탐욕은 인간의 지성과 영성의 눈을 어둡게 한다. 그때 나타나는 행동은 짐승보다 추하다. 짐승의 본능적 욕심은 제한적이지만 인간의 탐욕은 밑 빠진 독처럼 끝이 없기 때문이다.
3. 하나님을 알고 타락한 자는 많은 사람을 ‘발람의 길’에 빠뜨린다.
성도가 하나님의 뜻보다 탐욕과 자기 목적을 위하여 신앙이 종교화되면 ‘발람의 길’에 빠진다. 그것은 십자가 없는 신앙이요 세상 욕심으로 자기 유익만 구하는 신앙이다. 발람의 말 속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들어있고 경건한 모양도 있어 보였다(23:19). 위장된 신앙을 가진 적그리스도가 겉으로는 더 매혹적이다. 하나님 나라와 그의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데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보다 하나님 지식을 가진 자가 더 큰 해악을 끼칠 수 있다. 발람의 길에 선 자들은 누룩처럼 많은 성도를 넘어지게 만든다.
4. 하나님이 베푸시는 축복의 절정은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다.
하나님은 그의 뜻을 드러내는데 악인도 들어 쓴다. 본문에는 나귀까지 사용하여 그의 뜻을 드러냈다. 하나님의 뜻에서 빗나간 종교화된 신앙의 소유자 발람도 하나님 도구가 되어 여호와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고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했다. 발람을 통해 선포된 축복의 정점에서 모든 민족에게 복이 될 메시야를 예언했다(24:17-19). 발람의 고향 브돌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발상지였고 아브라함 고향에서도 가까운 지역이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먼 그곳에서 동방박사들이 별을 따라왔고 아기 예수에게 경배했다. 학자들은 그들이 발람의 메시야 별 예언 이야기를 알았을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있고 주님께 쓰임 받는다고 모두가 하나님께 속한 것은 아니다. 종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 십자가 고백이 살아 있어야 한다.
☞ 나의 노트(깨달음과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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