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빈들의 양식] #23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23과
제목: 예수의 초막절 설교 Ⅰ (요7:14-8:11)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예수가 공생애 세 번째 유월절 지난 초막절 즈음 갈릴리 사역을 끝맺고 오랜만에 예루살렘으로 향했다. 그가 십자가를 지기 전 약 6개월 정도 남은 때였다. 두 번째 유월절 안식일 논쟁 때부터 예수를 죽이고자 했던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수의 준비된 설교는 “너희가 왜 나를 죽이려고 하느냐?”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풀어나갔다. 예수를 얽어매는 꼬투리를 잡기 위해 정치 종교 세력의 당국자들은 음행 중에 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를 시험했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246-258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예수가 갈릴리 사역을 청산하고 유대로 올라간 목적은 무엇인가?
2. 오랜만에 예수가 유대 지역으로 왔을 때 예루살렘 분위기는 어떠했는가?
3. 초막절은 어떤 절기인가? 초막절을 장막절, 수장절이라고도 부르는 연유는 무엇인가? 또 예루살렘에서 초막절 행사는 어떻게 진행되는가?
4. 예수는 초막절 설교를 어떤 화두로 시작했으며 그 내용은 무엇인가? 그의 초막절 설교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5. 예수는 음행 중에 잡혀 온 여인에게 어떻게 하였는가? 이 사건이 율법과 예수에 관하여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 본문 해석 노트
1. 자기 영광을 위한 율법의 오용은 주님 영광을 가리고 예수의 생명을 죽이는 죄다.
초막절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 중심의 당국자들은 예루살렘에 올라온 예수를 붙잡아오라고 사람들을 보냈다. 그들이 예수를 죽이고자 하는 명분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침으로 안식일 율법을 범했다는 것이었다. 예수가 그들에게 말했다. “어찌하여 나를 죽이려 하느냐? 너희는 모세의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그 율법으로 나를 정죄하는구나. 너희는 안식일에 할례의식을 행하면서 내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쳤다고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요7:19-23)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던 대중의 관심이 예수에게 쏠리자 시기심으로 인한 인간적인 동기에서 그를 제거하려고 했다. 예수가 선지자일지 모른다는 반대 목소리에 그들은 갈릴리 시골에서 선지자가 나올 수는 없다고 했다(요8:45-52). 이에 예수는 “자기 영광만 구하는 자는 불의하나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다”라고 하며 허울뿐인 그들 내면의 동기를 지적했다(요7:16-18). 오늘날도 지도자들이 신앙적 명분을 앞세우면서 인간적 동기를 분별하지도 못하는 오류를 범한다. 그것은 참된 예수 생명의 역사를 말살하는 악행이며 영적 권위를 남용하는 죄라고 할 수 있다. 성도의 개인적 일상에서도 인간적인 유익과 안일함으로 내면에서 역사하는 성령의 원하심을 무시하고 주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2. 위로부터 온 예수는 그의 예언대로 승천하여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입증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어디서 왔는지 사람들이 모르게 오는 분이라고 알고 있었다(요7:27). 마치 아브라함의 십일조를 받았던 하나님의 제사장 살렘 왕 멜기세덱과 같은 존재로 여겼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를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제사장”으로 표현했다. 멜기세덱은 혈통적 계보를 따라 등장하는 인간적 존재가 아닌 하나님이 보낸 어떤 존재를 상징했다. 예수는 초막절 설교에서 자신은 아버지 하나님이 보낸 영원한 존재이며 위로부터 내려온 메시아임을 분명히 했다. 또 그가 장차 하나님 아버지께 다시 돌아가는 장면을 사람들이 보게 될 때 그가 어디서 온 자인지 확실히 알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요7:29-34). 부활 후 그의 승천 장면은 이 예언에 대한 확증을 보여 주는 메시지였다. 초막절 설교에서 예수는 자신이 혈통적 출생으로 태어난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나온 존재로서 영원한 제사장이요 메시아임을 드러내놓고 밝혔다.
3. 영생은 영혼이 목마른 자에게 주는 예수의 생명이다.
예수는 초막절 끝날에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생수의 강’ 설교를 했다. 초막절은 이스라엘의 출애굽 광야 생활을 기념하며 하나님 은혜를 감사하는 감사절 축제였다. 유대인들은 광야의 나그네 삶 동안 함께했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상기하며 초막절을 ‘물과 불의 축제’라고도 했다. 초막절 피날레 행사는 실로암 물을 길어다 번제단 제물에 붓고 이사야서와 시편을 낭송하며 풍성한 비를 기원했다. 예수는 그 행사 현장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라고 하며 생수의 강을 언급했다(요7:37). 예수가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이 우물의 물을 마시는 자는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라고 했다(요4:13-14). 요한계시록에서는 영생을 “갖가지 열매를 맺은 생명 나무 사이로 흐르는 생명수의 강”으로 표현했다(계22:1).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온다는 말은 영원성과 넘치는 풍성함의 누림을 함축하는 영생에 대한 표현이며, 믿는 자 내면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를 일컫는다. 예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며, 영생은 하나님과 또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요14:6, 17:3).
4. 영생의 또 다른 이름은 구원이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율법을 무시한다고 여겨 음행 중에 잡혀 온 여인을 데려와 예수를 시험했다. 율법의 근본정신을 찾는데 소홀했던 당국자들은 율법으로 예수를 죽이려 했다. 예수는 영원한 생수인 영생을 주려고 왔다며 율법과 영생을 대조하여 가르쳤다. 모세 율법의 정죄는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예수가 주는 영생은 흘러넘치는 생명력으로 정죄 아래 있는 죄인을 소성시킨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모세 율법에 근거하여 음행한 여인을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예수를 압박했으며 예수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치라고 응대했다. 예수는 죄인을 벌할 자격이 있는 의인이었지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했다(요8:11). 예수는 율법으로 심판하기 위해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려고 왔음을 보여 주었다. 예수는 율법과 영생의 대조에 이어 율법과 구원을 대조시켰다.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여 죄사함에 대한 목마름을 갖게 한다. 인간의 모든 문제 해결의 본질적인 실마리는 죄사함이다. 죄는 영생의 풍성함을 가로막고, 죄사함은 죄로 막힌 길을 뚫어 영생에 이르게 한다. 이것이 구원이다. 이 영생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은 메시아 예수를 죄인들에게 보냈다. 하나님의 그 경륜이 복음의 비밀이다. 이 비밀을 깨달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구원과 영생을 선물로 받는다. 이 비밀을 깨닫는 것이 복중의 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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