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선교사, 아들 선교사
<2010년5월 방파선교회 35주년 기념 책'부르신곳에서/쿰란출판사' 발간 을 위해 기고한 글>
아빠 선교사, 아들 선교사 박 광 민 (박영주/남성숙 선교사의 장남)
1편 -군대로 간 요셉
“마지막 기회입니다. 집에 가고 싶으신 분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대답 없는 메아리처럼 연병장 내의 300명은 아무런 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그럼 지금부터 교육상 경어는 생략하도록 하겠다.” 교관은 주머니에서 새까만 선글라스를 꺼내어 쓰고, 지휘봉으로 빨간 교관모자를 살짝 위로 올리고는 소리쳤다. “다들 엎드려 뻗쳐!!!” 끝이 보이지 않던 나의 기본군사훈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4개월간의 혹독한 훈련을 마친 뒤 양 어깨에 백만광촉의 다이아몬드를 달고 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런 공군통역장교로 임관할 수 있었다.
1995년 선교사이신 부모님 손에 이끌려 남태평양 피지로 갈 때까지만 해도 다시는 한국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앞이 보이지 않는 내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하루하루를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살았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나를 위해 예비하신 한동대학교를 선물로 주셨으며 졸업 후 ‘군대’라는 또 다른 선물(?)을 주셨다. 사춘기를 외국에서, 그것도 피지라는 특수한 곳에서 보냈기 때문에 나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 기존의 한국대학생들과는 사뭇 달랐다. 친구들은 나를 ‘피지보이’라고 부르며 한국의 이것저것을 알려주었다.
나름대로 한국의 대학생활에 재미를 붙여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새로운 비젼을 발견하여 학업에도 열심을 쏟았다. 그런 내가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은 그 당시로서는 생각하기도 싫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건아로써 군대를 갈 수 밖에 없다면, 이왕이면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고 싶었다.
모교 한동대학교 교수님의 권유로 공군학사장교 중에 통역장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기도하며 준비한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런데 막상 군대에 간다고 생각하자 이것저것 걱정되는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을 아시고 요셉을 통하여 담대케 하셨다. 창세기 41장에 “…(요셉)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인에게 해석하더니 그 해석한 대로 되어…”에서의 해석은 영어성경에 interpret(통역)라고 쓰여있다. 그리고 통역장교는 translator(번역가)가 아닌 Interpretation Officer이다. 죽음을 무릅쓰고 바로 앞에서 해석했던 요셉(interpreter)과 함께하셨던 하나님께서 통역장교(interpreter)로 입대하는 나와도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더해졌다.
요셉은 자신이 원하여 애굽으로 팔려가고, 보디발 장군의 집에서 일하며 또한 감옥에 갇힌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여정가운데 함께하시며 축복하사 바로의 꿈 해석을 허락하셨고 애굽의 총리로, 또 하나님의 도구로 아름답게 사용되도록 하셨다. 나도 피지에 가고, MK가 되고, 한국으로 대학을 오고 그래서 군대를 가고, 이 모든 일들이 꼭 내가 원해서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애굽에서 함께하신 요셉의 하나님께서 오늘날 나에게도 함께하사 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모습을 보게 하셨다.
군생활이 즐겁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세상에 나가기 전 다시 한번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뜻에 감사했다. 더욱이 공군통역장교로써 국가간 장군회의통역, 한미 항공기사업회의통역 등 내 나이와 경력을 고려해볼 때 참석하기 어려운 국제회의의 중심에서 양국간의 이해를 도모하는 일은 생각보다 신나고 가슴 뿌듯한 일이었다.
비록 언어에 대한 부담과 미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어려울 때도 있었지만 때에 따라 보이지 않게 도와주시고 능력 더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더 겸손히 감사 드릴 수 있었다. 군대에 와서 장군님 곁에서 통역(interpret)하는 것처럼 언젠가는 요셉처럼 하나님의 뜻을 해석(interpret)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늘의 꿈을, 그 놀라운 비밀을 이 세상사람들에게 해석하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는 것, 하늘의 비밀을 전하는 ‘하늘문화재’가 되는 것이 군시절 나의 작은 소망이자 기도였다.
2편- 뉴욕으로 간 요셉
군 제대를 앞두고 미국 장교들이 미국에서 공부할 것을 권했다. 미국이란 나라를 상상만 해보던 피지 촌놈이었던 나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평소 같았으면 절대 꿈도 못꾸었을 것을 군생활 하면서 그리고 영어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꾸준히 모은 돈을 끓어 안고 유학을 준비했다. 6개월간의 준비 끝에 저명하면서도 학비가 제일 저렴한 뉴욕시립대 방송학 석사과정에 합격하여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첫수업의 내 모습을 보고 눈에서 레이져가 나간다는 둥 짧은 머리의 갓 제대한 군인이 너무 신나게 수업을 듣는다며 친구들이 놀렸다. 10년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꿈을 하나님께서 들어주셨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바위 위에 높이 두시리로다”(시27:5).
아무것도 없던 초라한 피지 땅에서 고등학교 졸업 후 갈 곳이 없어 매일 책상 밑에 들어가 울던 생각이 났다. 아버지의 병환으로 우연찮게 귀국한 뒤 한동대에 입학했을 때가 생각났다. 그러나 친구들의 놀림과 힘든 한국대학생활 때문에 미국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차마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지 못한것도 기억났다.
이제 초등학교시절 TV에서 보던 뉴욕을 꿈꾸며 가고 싶다 소리쳤던 순간으로부터 20여년이 흘렀다. 가난한 시골교회목회자의 아들로, 식인종 피지인들의 비상양식(?) 친구로, 한국의 뿌리를 찾던 대학청년으로, 조국의 영공을 방위하던 군인으로, 그리고 이제는 세계의 중심 뉴욕에서, 모든 인종이 모여있는 이 곳에서 세계의 공중파 방송과 인터넷을 통해 방송될 예수의 얼굴을 TV화면에 담고 있다.
2009년,자력으로 아니 주님의 큰 은혜로 석사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 NBC 방송국을 거쳐 CUNY Channel 교육방송에서 일하며 이사야 47장에 근거한 Eastbird Media 방송프로덕션 회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2010년 현재 나의 20대 인생의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뉴욕 IN2온누리 비전교회 간사(Mission Builder)로 헌신하여 6명의 다른 간사들과 1년간 공동체 생활을 하며 교회에 봉사하고 있다.
가난이 싫어서 아버지께 목사 그만두고 슈퍼아저씨하라고 소리지르던 나를 하나님께서는 그 목사선교사 아버지를 통해 새로운 2세 문화선교사를 키우셨다. 이번 수기를 작성하면서 지난 선교지의 삶을 다시 한번 정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선교지에서의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들, 그리고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스스로 돈을 벌면서 살아내야 했던 혹독한 현실이 많이 외롭고 고달펐지만 이 모든 연단을 통해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는 은혜를 받았다.
또한 그 분께서 내게 가지고 계신 계획을 하나씩 실현하고 계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을 선교사로 부르시면서 나를 제 2의 선교사로 함께 부르셨다. 존경하는 나의 부모님이 앞서 가시는 그 길, 나 역시 그 길을 따라가면서 하늘의 푯대를 향해 질주하는 멋진 삶을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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