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30 [광야의 만나]
박영주의 「모세와 함께 시간여행」 책과
짝을 이루는 묵상 노트
제30과
제목: 메뚜기 정체성 (민13-14장, 신1:34-46)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가나안 정탐보고를 듣고 많은 사람이 낙심했다. 절망으로 통곡하며 지도자들을 원망했다. 가나안 땅 입성을 포기하고 광야에 계속 살 것인지 이집트로 돌아갈 것인지 고민했다. 소수의 사람만 여호와를 의지하고 약속의 땅으로 가자고 했다.
☞ 관찰 질문
1. 가나안 땅 정탐보고를 들은 백성들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당신은 살면서 세상(문제)은 거대하고 나 자신은 ‘메뚜기 같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2. 여호수아와 갈렙은 삶의 현장에서 부딪히는 문제들을 어떻게 ‘밥/양식’으로 여길 수 있었을까?
3. 이스라엘을 다 멸하고 모세를 통해 다시 시작하겠다고 할 만큼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유는 무엇일까?
4. 하나님은 모세의 중보기도를 듣고 뜻을 돌이켰다. 모세는 심판받을 죄인을 위해 중보자가 된 예수의 예표였다. 예수를 당신의 중보자로 믿는가?
5. 이스라엘 1세대는 가나안에 들어갈 수 없다는 하나님의 결정에 불복하고 뒤늦게 가나안 땅을 공격하다가 참패한 사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 본문 해석 노트
1. 메뚜기 정체성은 창조주에 대한 모독이다.
한때 노숙자들을 위한 인문학 강의가 그들의 갱생을 돕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는 보고가 있었다. 길이 끊긴 삶의 가장자리에 서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문학은 인간 본연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을 정탐하고 그곳 사람들과 비교하여 자신들을 메뚜기로 표현했다. 심각한 자기비하였다. 그들의 반응에 진노한 여호와는 모세에게 그들을 전염병으로 다 멸망시키고 노아 때처럼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다(민14:11-12). 창조주의 걸작품으로 이 세상에 나온 인간이 스스로 존재 가치를 부정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여긴다면 그들을 쓰레기장에 폐기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였다. 메뚜기 정체성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인간 가치에 대한 부정으로 창조주의 권위를 무시하고 모독하는 처사다.
2. 창조주 앞에 인간의 바른 정체성은 무엇인가.
가나안 정탐의 실패는 부정적 시각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눈으로 현실을 보지 못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정복해야 할 가나안을 밥이라고 했다(민14:9). 인생의 모든 장애물은 건강한 생존을 위해 필요한 음식일 수 있다. 단순히 긍정적 사고가 아니라 정체성 고백이다. 인간의 바른 정체성은 “나는 창조주의 섭리와 허락으로 태어났다.”라는 고백에서 비롯된다. 정체성은 ‘인간다움’이다. 이 고백이 신앙의 출발점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모의 실수로 내던져진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섭리로 이 땅에 등장했다.
신앙은 하나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창조주가 나의 출생을 허락하셨기에 그가 나의 완성을 도우실 것이라 믿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사탄은 갖가지 방법으로 세상에 어둠을 뿌린다. 그러나 신앙은 우리에게 어둠이 아무리 짙어도 새벽은 반드시 온다고 믿게 한다. 성도는 부활의 새벽을 보장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최후의 승리를 믿는다.
3.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 구원을 위해 중보자를 세우신 것이다.
구약 속 하나님은 언뜻 잔인한 분으로 비친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법)를 무시하지 않는 자비와 사랑을 보여준다. 공의 없는 은혜와 사랑은 힘이 없고 오래가지 못한다. 정탐 후 실망스럽게 반응한 백성을 다 죽이는 것이 여호와의 뜻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살리는 것이다(요6:39). 죄의 홍수로 끊어진 다리를 보수 공사하듯 중보자 모세를 세웠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했다. 엇나가는 죄인들에게 하나님은 계속 회복의 길을 제시했으며 그 길을 열어 놓았다. 이 세상에서 잠시 겪는 고난과 실패는 인간다움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한 방편이다. 어려움도 복이 되게 하는 주님을 믿을 때 메뚜기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
☞ 나의 노트(묵상과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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