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JI박영주의 미션노블 [아그니의 불] 연재 2회

동네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난 진작부터 그 둘 사이가 수상하다고 생각했어. 크리스마스 나무 그늘 아래 꼭 붙어 앉아 있더라고.”
“나도 둘이 사탕수수밭에서 나오는 걸 본 것 같아.”
"설마 했는데, 정말 그럴 줄이야."
이모에 대한 부모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는 이모를 벼랑 끝으로 내몬 술주정뱅이 쿠말이 견딜 수 없이 미웠다.
아버지는 유부녀가 유부남과 바람이 나 도망치기까지 아무 낌새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며 어머니에게 화를 냈다.
“작은 사원이지만 그래도 내가 사제인데 동네 사람 보기 창피해서 낯을 들 수가 없어.”
아버지는 이모의 가출이 쿠말의 술버릇 때문이라며 그에게 한바탕 난리를 치고도, 정작 발 벗고 이모를 찾아 나섰다.
경찰서에 실종 신고를 한 뒤, 이모의 낡은 사진 한 장을 들고 라우토카 시내는 물론 바와 라키라키 지역까지 찾아다니며 수소문했다.
그러나 이모의 행방은 좀처럼 드러나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온 가족은 지쳐 갔고, 실망과 낙담은 깊어졌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다그쳤다.
“당신, 처제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지?”
어머니는 모른다고 대답했지만, 아버지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두 자매가 워낙 각별한 사이였기에 어머니가 이모와 남몰래 연락을 주고받고 있으리라 의심했다.
이모가 야반도주한 뒤부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원을 찾는 신도가 줄어들었다.
집 안에서는 큰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아버지의 성정도 점점 거칠고 이상하게 변해 갔다.
어머니가 외출했다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의심 어린 눈으로 행적을 캐물었다.
“당신 어디 가서 누구 만나고 오는 거야?”
“내가 누구를 만난다고 그래요?”
“시치미 뗄 거야? 당신이 라즈 그 자식과 가게 앞에서 시시덕대는 것을 내가 분명히 보았는데.”
“내가 언제 그랬어요? 왜 생사람을 잡아요?”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사탕수수밭에서 나오는 것을 누가 보았다는데 계속 발뺌할 거야?”
어머니가 극구 부인하자 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졌다.
어머니는 억울함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누구에게도 속내를 터놓지 못한 채 냉가슴만 앓았다.
아그니는 아버지가 억지를 부리며 어머니를 몰아세울 때마다 참지 못하고 대들었다.
“아버지, 왜 자꾸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그럴수록 아버지의 분노는 더욱 거세졌다.
아그니는 어머니를 향한 연민과 아버지를 향한 분노 사이에서 몹시 괴로웠다.
그는 아버지가 왜 이토록 심한 의처증 증세를 보이는지 생각해 보았다.
아직도 미모를 잃지 않은 어머니가 이모처럼 다른 남자와 달아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아버지의 마음속에 뿌리내린 것은 아닐까.
그렇게라도 이해해 보려 했지만, 아버지를 향한 원망과 분노는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다.
어느 날 밤, 꿈속에서 그는 가네샤가 되어 있었다. 파괴의 신 쉬바가 그의 아버지였고, 파르바티가 그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목욕을 하겠다며 아들 가네샤에게 욕실 문밖을 지키라고 했다. 아버지 쉬바가 어머니를 찾아 집 안을 돌아다니며 큰 소리로 부르고 다녔다.
마침내 욕실 앞에 이른 쉬바는 가네샤를 밀치고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가네샤가 된 아그니는 두 팔을 벌려 아버지를 가로막았다.
순간, 쉬바가 늘 들고 다니던 삼지창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의 머리가 몸에서 떨어져 나갔다.
가네샤가 된 아그니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바닥에 뒹구는 자기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머리 없는 아들의 몸통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가슴에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차올랐다.
슬픔은 목까지 차올라 피처럼 쏟아져 나왔다.
홧김에 아들의 목숨을 빼앗은 쉬바는 뒤늦게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아들을 다시 살려 줄 테니 울지 말라며 아내를 달랬다.
곧 밖으로 나가 지나가던 코끼리 머리를 베어 들고 돌아와 가네샤의 몸통에 붙였다.
코끼리 머리가 자신의 몸에 붙는 순간, 아그니는 온몸에 벼락이 내리꽂히는 듯한 전율을 느꼈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꿈에서 깨어났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는 젖은 이불을 걷어차고 한동안 숨만 몰아쉬었다.

갑자기 변해버린 가정의 분위기가 불안함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자기 통제력을 잃은 아버지는 날마다 양고나에 취해 지냈다.
신도들이 찾아와도 만나지 않았고, 더는 사제 노릇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집안 형편은 급속히 기울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불과 일 년 앞두고 있었지만, 아그니는 더 이상 학교에 다닐 수 없었다. 교복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 뒤로 그는 이 일 저 일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품을 팔았다.
청소년 축구 국가대표팀에 선발되고도 꿈을 포기해야 했던 그를 감독은 무척 안타까워했다.
감독은 아그니가 영업용 밴 운전기사로 일할 수 있도록 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아침에 아그니는 머리가 깨질 듯한 통증 속에서 눈을 떴다.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밤새 꿈에 시달리며 잠을 설친 탓인지 몸살이 날 듯 온몸이 욱신거렸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식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의자에 몸을 내던지듯 털썩 주저앉았다.
어머니는 식탁 위에 식빵과 버터를 내놓고 머그잔에 진한 실론티를 타면서 여동생에게 말했다.
“가서 아버지 아침 드시라고 불러오너라.”
잠시 뒤, 밖에서 여동생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졌다.
어머니의 손에서 컵이 떨어졌다. 산산이 부서진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그니는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 단편 [아그니의 불]은 계속해서 7회까지 연재됩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남태평양 섬나라 피지에서 선교사로 31년,
세월의 발자취에 묻은 다양한 스토리들을 선교 소설 [MISSION NOVEL]로 엮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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