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의 후예들 - 월간지 [빛과 소금]에 연재한 글
월간지 <빛과 소금>에 연재한(1997년) 내용(4회)을 첨부합니다.
피지는 영국 연방에 속했다가 1987년 공화국으로 독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정치 사회 제반 행정 제도는 다분히 영국식을 따르고 있다. 영국 여왕 생일이 국경일 중의 하나인 것이 그 영향력을 대변해 준다. 그러면서도 보수적인 추장(Ratu) 제도가 사회 전반에 깊게 뿌리 내리고 있다. 전 국토의 80% 이상이 추장들이 관리하는 부족 땅이다. 이 부족 땅의 소유권을 행사하는 추장을 ‘마탕갈리'(Matagali) 라고 한다.
우리 집 두 사내아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중학교 교복 바지가 치마였다.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우리 부부는 뒤에서 한참 웃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도 피지인 청년들로 구성된 선교훈련 센타에 출근하면서 슬루를 입고 나섰다. 아내는 슬루 입은 내 모습이 낯설어 뒤에서 쿡쿡거렸다. 앉을 때는 무의식중에 다리를 벌리거나 책상다리를 하다가 아내에게 주의를 받기가 일쑤였지만 그래도 항상 더운 이곳에서 바지보다 훨씬 시원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피지는 기독교가 전파되기 전까지 식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다. 선교사들은 이 문화를 청산하기 위해 노력했고 그 와중에 그들에게 잡아먹히기까지 했다. 피지인들은 사람을 잡아먹으면 그 죽은 자의 힘과 지혜와 영기(靈氣)를 소유하게 된다고 믿었다.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시골스럽고 순박하기만 한 이들이 식인종의 후예였다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피지는 한 나라 안에 전혀 이질적인 두 문화를 소유하고 있다. 피지 원주민 문화와 피지 인도인 문화이다. 이 두 종족은 100년이 넘도록 함께 살아오면서도 결코 서로 동화되지 않고 기름과 물처럼 분리된 채 이중적인 문화를 만들며 삶을 영위해오고 있다. 서로 결혼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언어, 음식, 종교 등 생활 풍속을 달리한 채 종족 간 갈등이 심각한 사회적 숙제로 남아 있다. 연중 두 번의 큰 축제가 이들 문화를 잘 대조시켜 준다. 8월에는 원주민의 축제인 ‘하이비스커스’(Hibiscus) 축제가 있고, 10월에는 인디언들의 ‘디왈리’(diwali) 축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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