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지 귀임 (난디공항)
2003년 1월 2일 (목) 날씨: 맑음
[난디 공항에 주님이 앉아 계셨다!]
2003년 새해 첫 날 우리는 서둘러 짐을 챙겼다. 출국 일정을 앞당긴데다가 이 시람 저 사람들을 만나 송별 식사를 하느라고 마지막에는 짐 쌀 시간이 부족했던 것이다. 광민이 짐을 강남 원룸(최권사님이 소개해줘서 세 없이 쓰게되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에 옮겨다 놓고 돌아서려니 아들과 헤어지는 섭섭함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한국을 떠나는 석별의 감정을 채 정리하지도 못하고 우리 부부는 피지행 대한항공에 몸을 실었다.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서 잠을 청했다.
비행기가 피지의 국제공항 난디에 내리고 있을 때는 벌써 1월 2일 아침 이었다. 9시 30분 비행기가 도착하자 우리는 서둘러 출국심사대 앞에 줄을 섰다. 마중 나온 김선교사님이 밖에서 오래 기다릴 것을 염려해서였다. 차례가 되어 내가 먼저 여권과 비자(Work Permit)를 담당관에게 내밀었다. 피지인 여자 담당관은 돌아갈 비행기표가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언제 돌아갈지 몰라 편도로 왔다고 했다. 그녀는 아무래도 자세한 조사가 더 필요하니 뒤에 가서 앉아 있다가 나중에 다시 오라며 비토를 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을 알고 우리는 당황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항을 빠져 나갔다. 나는 다시 가서 그 담당관 앞에 섰다. 나의 상황을 간단히 말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를 컴퓨터상에 우리의 비자가 만료되었으니 돌아갈 비행기표를 사야 관광객으로 입국할 수 있으며 사역은 할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우리쪽에는 이상이 없으니 수도 수바 이민성에 문의해 볼 것을 부탁했다. 그녀는 우리에게 뒤에 앉아서 또다시 기다리라고 했다.
우리는 다른 공항 직원에게 부탁해서 밖에 기다리는 김행란에게 우리가 안에 도착했지만 뭔가 문제가 있어 늦는다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얼마후 지나가는 한국 여행사 직원에게 부탁해서 밖의 김선교사와 직접 통화할 수 있었다. 우리의 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우리의 현지인 파트너 마이카에게 연락을 취해보라고 했다.
공항에 갇힌채 우리만 덩그마니 남아서 5시간을 기다렸다. 피지 행정이 느리기로 유명해서 1시간 정도는 각오했지만 너무했다. 공항 직원들도 다 빠져나가고 공항 경비만 남아 있었다. 우리는 가지고 있던 물병으로 점심을 대신했다. 오전 9시 반에 도착하여 오후 2시 반에 공항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김선교사가 분주히 뛰면서 애쓰고 마이카가 공항 직원에 직접 전화하고 해서 이민성 확인 절차를 마쳤던 것이다. 나올 때 공항 사무장이 연신 미안하다고 했지만 우리는 화가나서 할 말을 잃었다.
5시간 동안 공항 안에 갇혀 있으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에게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우리의 속 마음을 들켰다는 것이었다. 피지로 다시 오고싶어하지 않은 우리에게, 피지도 오기 싫은 사람은 우리도 안받는다고 거부하는 것 같았다.
기다리는 동안 오세철 목사님이 주신 편지 생각이 났다. 한국에서 인천 공항버스를 타기 직전에 오세철 목사님께 빌린 차 갖다 드리면서 큰 절을 했다. 시간에 쫒겨 바로 일어섰더니 편지 한 장을 내미신다. “이 안에 내가 해주고 싶은 말 다했어!” 아파트 입구까지 나와 배웅해 주시는 목사님의 손을 놓을 때 눈물이 왈깍 쏟아지는 것을 참으며 나는 “다시 돌아와 뵐때까지 건강하셔야 합니다.” 하고서는 뒤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공항버스에 몹을 싣고서 편지를 열었더니 100불짜리 1장과 편지가 들어 있었는데 이사야 55장 8-9절 말씀을 내게 주셨다. 그 말씀은 내가 족자를 만들어 항상 갖고 다니던 말씀이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유선교사님의 말씀도 비슷했다는 생각이 났다. 한국을 떠나오기 직전 그들 부부와 우리 부부가 송별 식사하는 자리에서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복잡한 우리의 심정을 털어 놓았더니 유선교사가 한 마디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려고 하지말고 주님이 원하는 일을 하세요.”
공항에 주님이 앉아 계셨던 것이다. 피지 땅에 내리기 전에 우리의 마음을 정리하라고 종용하고 계셨다. 우리가 5시간을 기다린 것이 아니고 실상은 주님이 우리가 마음을 정리할 때 까지 5시간 동안 점심도 안 드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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