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인도인 이민 초기 역사
1. 인도-피지인의 초기 피지 이주 역사
1879년 5월 14일 인도인 계약 노동자들이 레오니다스(Leonidas) 배를 타고 첫 번째로 피지 레부카(Levuka)에 도착했다. 사탕수수 농장과 공장에서 계약 노동자로 피지에 이주 하게 된 것은 피지 정부의 요청에 의해서였는데 영국에서 파송된 피지 식민지 첫 번째 총독 아더(Sir Arthur)가 그의 비서관 서스톤(Tharston)의 조언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서스톤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일할 수 있는 피지 토착민은 없고 반면에 인도인에게는 적은 인건비와 교통비를 지급해도 편하게 다룰 수 있다고 조언 하였다.
아더는 대추장회의(GCC) 동의를 얻어 인도인 장기계약 고용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지주들과 언론이 반대하고 나섰지만 아더 총독은 이 일이 피지에 유익을 가져다 줄 것으로 확신하고 강경하게 추진해 나갔다. 초기에는 사탕수수 산업에 관하여 언급하지 않고 단순하게 산업 노동자로 홍보하였으며 계약기간이 끝나면 본인의 희망 여부에 따라 피지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보장 한다고 제안 하였다. 그리고 이듬해 1880년 식민지 설탕 정제회사(Colonial Sugar Refining Company)를 설립했다.
한편 인도 본토에서는 피지 이주 장기 계약 노동자들을 모집할 때 힌두교 교계에서 카스트 제도의 붕괴를 우려해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이상한 헛소문이 인도인 이주민 사회에서 떠돌았는데 피지에 가면 기름 도랑에 거꾸로 매달릴 것이며 기독교로 개종을 강요받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노동자들을 모집하던 사람들은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무식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 캠프를 치고 축제를 열었으며 특히 가족이나 친구들을 잃었거나 멀리 떨어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적극 홍보 활동을 했고, 피지를 인도의 캘커타 근교 어떤 지역 정도로 소개 했으며 당시 인도에서 보통으로 받는 일당 1실링(12annas)을 지불하며 일은 가볍고 쉬운 일이라고 홍보 하였다.
노동의 필수적인 의무와 병들거나 몸이 약해져서 일을 잘 못하게 될 경우 벌금을 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노동자들은 계속되는 기근과 도시의 전염병 등으로 슬픔의 땅 인도 본토를 떠난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졌고 가난으로부터 탈출과 안전보장 약속에 귀가 솔깃해 결국 피지 이민을 결심하게 되었다.
첫 번째 노동자 수송선 레오니다스(Leonidas)는 인도 캘커타를 출항해서 70-80일 정도 항해해서 1879년 5월 14일 498명이 피지 레부카 근처 야누다 라일라이(Yanuca Lailai)에 도착하게 되는데 오는 도중에 약 1%가 배멀미와 질병으로 배에서 죽었다. 또 야누다 라일라이에 도착하여 그들이 가지고 온 질병이 피지에 전염시킬 위험이 없어졌다고 판정받기까지 90일을 더 체류했는데 그 동안에 15명이 더 죽었다. 그 후 약 5년 동안에 인도인 계약 노동자들은 6만여 명이 피지에 이주하게 되었다.
그들이 피지에 도착하여 보냈던 초기에 그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족 당 작은 방 한 칸씩 주어졌는데 창문도 없고 통풍도 안 되는 집이었다. 가족이 없는 사람들은 3명씩 합숙해야 했다. 마룻바닥도 없어 땅 바닥에 자리(메트)를 깔고 잠을 잤으며 옆방과는 천장까지 높여 쌓지 않은 낮은 벽으로 인해 사생활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다.
매일 중노동은 의무였으며 주어진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경우 매를 맞거나 감옥에 갇히거나 벌금을 물게 했다. 여자들도 남자들과 똑같이 일을 해야 했다. 다만 예쁜 여자들은 감독관들이나 관리들의 집안일을 하며 약간의 혜택을 누렸지만 대부분은 남자 5명에 여자 2명씩 조별로 묶어 일을 시켰는데 성범죄와 남자들 간의 살인 사건 등으로 매우 어렵고 혼탁한 생활이 계속 되었다. 그리하여 11살짜리 부인, 12살짜리 아기 엄마들이 비일비재 하였고 30세가 넘으면 늙은 여인에 속하게 되었다.
5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났을 때 대부분의 계약 노동자들은 본국으로 돌아갈 배 삯이 없었기 때문에 5년간의 재계약에 들어갔고 점차 그들은 피지 땅에 정착하여 살기 위한 방도를 강구해야만 했다.
(박영주의 박사학위 논문 - 인도 피지인의 超越的 實在들에 대한 認識과 實存的 삶에 대한 宣敎的 應答 - 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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