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빈들의 양식] #13
박영주의 사복음서 스토리
「벤 아담」책과 짝을 이루는
큰 그림 성경 해석과 인사이트(insight)
제13과
제목: 갈릴리 2차 사역 Ⅰ
(눅7:1-50, 마11:1-30)
내가 붙이는 제목 :
☞ 본문 요약
예수는 열두 제자를 확정하고 산상수훈을 베푼 후 본격적인 갈릴리 사역을 시작했다. 가버나움을 중심으로 북쪽 고라신, 동쪽 벳새다, 남쪽 나인성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마11:20-30).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역 방문 없이 1년 반 정도 갈릴리 지역 사역에만 집중했던 시기가 갈릴리 2차 사역 기간이다. 그 기간 전반부에 막달라 마리아 이야기, 백부장 하인이 병 고침 받은 이야기,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 살린 이야기, 세례요한 제자들이 예수를 방문한 이야기 등의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상황과 배경 「벤 아담」 182-189, 209, 137-144 참조
☞ 관찰 및 토의 질문
1. 예수가 열두 제자를 확정하고 산상수훈을 베푼 후 본격적인 사역을 어느 지역에서 했는가? 또 어떤 사역들을 수행했는가?
2. 권능을 행하고 복음을 전했지만 끝까지 회개치 않은 자들에게는 예수가 무슨 말을 했는가?
3. 예수가 복음 전파와 많은 권능을 행한 갈릴리 2차 사역 전반부의 대표적 사례인 막달라 마리아 사건과 나인성 과부 아들 사건, 백부장 하인 치료 사건이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4. 세례요한이 그의 두 제자를 예수에게 보내 질문한 내용은 무엇이며 예수의 답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5.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요한보다 큰 이가 없으며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 본문 해석 노트
1. 예수의 영생과 소망의 사역은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향하고 있다.
막달라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들고 예수를 만나기 위해 어느 바리새인 집에 들어섰다. 당시 이스라엘의 대표적 상류계층인 바리새인과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대상인 그녀가 극단적으로 대조된다. 삶의 소망을 잃어버린 그녀는 예수를 만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독자 아들의 죽음으로 절망의 나락에 빠진 나인성 과부는 예수로 인해 다시 살아난 아들과 함께 영원한 소망을 맛보았다. 이방인은 절대로 하나님의 은혜를 덧입을 수 없다고 유대인들은 생각했지만, 예수는 이방인 백부장의 소원을 들어주며 복음은 온 세상을 위한 것임을 보여 주었다.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온 세상을 구원하려고 작정했다는 사실을 계시하며 세계선교의 문을 열었다.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망가져 회복할 수 없다고 낙인찍힌 자들이 회복되고, 죽음에 갇혀 회생할 수 없는 생명이라고 포기한 자들이 예수를 만나 살아났다. 태생적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고 배제된 이방인들에게까지 구원의 문이 열렸다.
그들은 모두 예수의 복음이 가슴으로 들리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예수의 모든 사역은 이 세상에서 소망을 잃어버린 사람들, 이방인을 포함한 온 인류를 향하고 있다. 그의 복음이 들리고 그의 사랑이 보이는 자는 복이 있다.
2. 끝까지 회개치 않은 자들의 존재는 선택받은 자들의 은혜를 반증한다.
예수는 갈릴리 전 지역을 순회하며 복음을 전파하였고 권능을 행하였다. 그래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다. 자기 생각과 무지에 갇힌 자들이었다. 온 세상에 담겨 있는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보지 못하는 미련함이 죄다. 사람이 보기에 불가능하다고 하나님도 불가능하다 여겨 포기하는 것이 죄다. 인간의 무능함만 생각하고 하나님의 권능을 부인하며 회개하지 않는 것이 심판에 이르는 죄다. 반면에 인간의 무능과 미련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전능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지혜다(마11:25).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이 베푸신 선험적先驗的 은혜에 기인한다고 예수는 말했다(마11:27). 쌍둥이 에서와 야곱 중에서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처럼 사람이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베푸신 은혜와 아들의 영인 성령의 조명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이다. 왜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버림받는 사람이 존재하는지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다만 영생을 얻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그들을 통해 자신들이 하나님께 선택적 은혜를 입은 사실을 반증으로 확인한다. 그것은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요 성도가 주님께 끝없이 감사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알 수 없는 구원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임을 아는 자는 복이 있다.
3. 예수의 모든 사역은 그가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보여 주고 있다.
옥중의 세례요한은 두 제자를 예수에게 보내 그의 메시아성에 관하여 질문하게 했다. 요한이 예수의 메시아됨에 관하여 의심이 생겼을 수도 있다. 예수의 사역 형태가 세례요한 자신과 달랐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자신의 최후를 예감하는 상황에서 조급함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또 인간 요한이 메시아 하나님이신 예수의 앎에 한계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예수가 요한은 위대하지만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마11:11)는 말은 요한이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성격의 인물이라는 전제가 들어있다. 예수를 메시아 곧 그리스도로 확실히 알고 있은 신약의 성도들은 이전의 사람들보다 복음의 깨달음 차원이 더 밝다. 계시의 점진성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무명의 보통 성도라도 세례요한보다 더 큰 자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제자들을 보낸 까닭에 관하여 예수의 메시아성에 대한 그의 회의로만 보아야 하는가?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계시로 예수를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이미 확증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면 또 다른 가능성도 있다. 예수의 메시아 되심에 관하여 확신하지 못하는 자기 제자들을 돕기 위해서였다고도 볼 수 있다. 방문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예수는 그의 메시아성에 관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면서 성경(구약)을 들어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확증했다. 또 가난하고 천하고 소외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그의 사역이 메시아의 표상이라고도 했다. 메시아 예수는 가난한 자들에게 물질적 번영을 약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파하였다. 복음은 현세적 성공이 아니라 소망을 잃고 의지할 데 없는 자들을 주님이 그의 나라로 영접한다는 하나님의 초청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자는 천국을 누린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는 샬롬을 이 땅에서 누리고, 장차 영원한 그의 나라에서 영생의 누림을 보장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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